2025년 11월 25일, 한국 방송계의 큰 별이 졌습니다. 원로 배우 이순재 전 국회의원이 새벽 시간 91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프로필
이순재(李順載)는 한국 연극, 드라마, 영화, 예능을 망라한 국내 최고의 배우 중 한 명으로, 무려 70년에 가까운 긴 연기 인생을 펼쳐왔습니다.
- 출생: 1934년 11월 16일, 함경북도 회령군 출생
- 학력: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철학과 졸업
- 연기활동 시작: 1956년 연극 '지평선 넘어'로 데뷔
- TV 데뷔: 1961년 KBS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
출생 직후 부친을 따라 중국 지린성으로 이주했던 그는 4살 때 조부모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습니다. 초등학생 때 해방을 맞이했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를 경험했습니다. 대학시절 영국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가 출연한 영화 '햄릿'을 보고 연기의 길에 눈을 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경력의 흐름
초기 활동 (1950~1960년대)
1960년에는 국내 첫 동인제 극단 '실험극장'을 공동 창단했을 정도로 연극계의 선구자 역할을 했습니다. 1965년 TBC 1기 전속 배우가 되면서 방송, 영화, 연극을 아우르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1980~1990년대 - 황금기
1991년 MBC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는 이순재의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역대 한국 TV드라마 평균 시청률 1위(59.6%)를 기록했으며, 이순재가 연기한 '대발이 아버지' 역할은 국민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극 중 그가 아들 이대발(최민수 분)을 부를 때 외쳤던 "대발아"라는 대사는 그 해 최고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얻은 높은 인기도는 정계 입문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1992년 14대 총선에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되었고, 민자당 부대변인과 한일의원연맹 간사 등의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만 1996년 정계를 은퇴한 후는 다시 배우 활동에 전념했습니다.
1999년 MBC '허준'에서 주인공 허준의 스승 유의태 역을 맡았습니다. 당시 최고시청률 64.8%를 기록한 이 작품은 지금까지 사극 최고시청률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순재의 명연기는 많은 명대사를 남겼습니다. 특히 허준에게 자신의 시신을 해부하도록 당부하는 장면은 영화사에 기록될 명장면으로 평가됩니다.
2000년대 이후 - 끊임없는 도전
70대에 접어들면서 이순재는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2006~2007년 MBC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하면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이순재 원장 역할을 맡았습니다. 극중 야한 동영상을 즐겨보는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재의 연기력으로 캐릭터를 완성했습니다. 젊은 세대는 그를 '야동 순재', '미스터 순재'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사랑했습니다. 이 작품으로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무한도전팀과 공동 수상).
2007년 MBC 월화드라마 '이산'에서는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영조 이금 역을 맡았고, 2008년 KBS2 '엄마가 뿔났다'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80대 후반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리어왕'을 무대에 올려 200분 분량의 방대한 대사를 완벽하게 소화해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시리즈에 출연하면서는 나이를 잊은 듯한 열정을 보여 젊은 시청자층과도 소통했습니다.
말년의 활동 및 최근 근황
고령에도 불구하고 이순재는 끝까지 현역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24년 KBS2 수목드라마 '개소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2024 KBS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개소리'로 드라마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92세(호적상)라는 고령에 받은 대상은 역대 최고령 대상 수상이 되었으며,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했습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 출연 중 건강 악화로 중도 하차했으며, 이후 병원 치료를 받으며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올해 4월 한국PD대상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며, 지난달 동료 배우 박근형이 이순재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을 언급하면서 팬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는 올해 11월 25일 새벽, 조용히 눈을 감게 되었습니다.
주요 대표작
드라마
- '사랑이 뭐길래' (1991~1992, MBC) - 대발이 아버지 역 / 평균시청률 59.6% (역대 1위)
- '목욕탕집 남자들' (1995~1996, KBS) - 아버지 역
- '허준' (1999, MBC) - 유의태 역 / 최고시청률 64.8% (사극 최고기록)
- '상도' (2001, SBS) - 중요 역할
- '이산' (2007, MBC) - 영조 이금 역
- '거침없이 하이킥' (2006~2007, MBC) - 이순재 원장 역
- '지붕뚫고 하이킥' (2009, MBC) - 이순재 역
- '엄마가 뿔났다' (2008, KBS2)
- '베토벤 바이러스' (2008, MBC)
- '선덕여왕' (2009, MBC) - 진흥왕 역
- '개소리' (2024, KBS2) - 이순재 역
영화
- '어머니'
- '굿모닝 프레지던트'
- '세종대왕'
연극
- '지평선 넘어' (1956) - 데뷔작
- '리어왕' - 리어 역
- '갈매기' - 연출
-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 (2024, 중도 하차)
예능
- '꽃보다 할배' 시리즈
특이사항 및 평가
배우로서의 특징
이순재는 올라운드 배우의 대명사였습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부터 우스꽝스러운 한의사까지, 비극적인 왕부터 따뜻한 스승까지 어떤 역할이든 완벽하게 소화해냈습니다.
그의 특기는:
- 탁월한 암기력: 90대 고령에도 200분 분량의 방대한 대사를 완벽히 소화
- 정확한 한국어 구사: 옛 한국어의 장단음 구분과 10모음 체계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몇 안 되는 배우
- 독특한 발성: 허스키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시원한 목소리
- 깊이 있는 작품 분석력: 인문학적 소양에서 나오는 해박한 지식
후배 배우들로부터의 존경
이순재는 연예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배우였습니다. 촬영장에서 다른 배우들 때문에 촬영이 늦춰지지 않도록 몇 시간씩 대기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였고, 후배 배우 김영철은 이순재의 마인드를 보고 크게 반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예능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는 모든 멤버들이 반말 컨셉을 포기하고 극존칭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후배 배우들이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진심으로 존경했습니다.
사회적 발언
2018년 미투 운동 당시 이순재는 "제자나 부하를 내 마음대로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봐야 한다"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연예계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신 발언으로 후배 배우들을 일깨웠습니다.
교육 활동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석좌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2024년 KBS 연기대상 수상 소감에서 제자들을 위해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교육을 중시했습니다.
수상 경력
- 제15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1972)
- 제1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최우수남우상 (1973)
-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무한도전팀과 공동, 배우 최초 수상)
- 2007년 제1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 공로상
- 2018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은관문화훈장
- 제39회 황금촬영상영화제 연기공로상 (2019)
- 2024 KBS 연기대상 드라마부문 대상
사람들이 기억할 그의 의미
이순재는 단순한 배우가 아니라 한국 방송사 자체였습니다. 1965년 TBC 개국부터 2024년 KBS까지 60년이 넘는 방송 역사를 함께 했으며, 세대를 초월해 모든 세대의 국민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는 연기란 무엇인가를 실천으로 보여준 배우였습니다. 90대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단순한 직업 활동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한 시상식에서 그는 "연기가 쉽지 않다. 평생을 했는데도 안 되고 모자라 늘 고민하고 연구한다"며 "최대한의 노력을 한 사람이 지금 남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병상에 누워서도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이 가장 행복"이라고 말했던 그의 평생을 바친 연기인생의 신조를 우리는 기억할 것입니다.
추도
"큰 별이 졌다"
국민배우 이순재의 부고 소식에 연예계는 애도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tvN 예능 '굿모닝FM'의 테이는 방송에서 "한평생 도전을 멈추지 않으셨던 열정을 다하셨던 모습 잊지 않겠다"고 추모했습니다.
겨우 며칠 전 '2024 KBS 연기대상'에서 받은 대상, 올해 신작 드라마 '개소리'에서의 주연 활약...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지막 선물이 되었습니다.
"소망은 무대에서 쓰러지는 것. 그게 가장 행복하다"며 남긴 말처럼, 이순재는 지금 영원한 무대로 떠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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