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인정보 3,370만 건이 유출되며 촉발된 쿠팡 사태가 이제 한미 간 국제 통상 문제로 번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2025년 1월 22일, 뜻밖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쿠팡의 주요 미국 투자사인 그린오크스와 알티미터가 미국 정부에 공식적인 조사를 요청한 것입니다. 투자사들의 주장은 명확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이유로 쿠팡을 '차별적으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이었죠.
이들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조치에 대한 조사와 함께 관세 및 기타 제재를 포함한 무역 구제 조치를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른 국제 중재 신청까지 제기하며 본격적인 외교 분쟁으로의 전환을 알렸습니다.
투자사들은 왜 이렇게까지 나왔을까?
그린오크스와 알티미터의 주장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흥미롭습니다.
투자사들은 한국 정부의 규제가 정상적인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고 봅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노동 분야 조사, 금융 분야 전반에 대한 조사(부정결제, 고금리 대출 관행 등), 세무 조사, 관세 관련 조사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죠. 마치 쿠팡을 겨냥한 '캠페인'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결과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입니다. 쿠팡의 뉴욕 증시 주가는 지난해 11월 30일 개인정보 유출 사실을 공개한 이후 약 27% 하락했거든요. 그린오크스는 약 14억 달러(약 2조원) 규모의 쿠팡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니, 투자사들의 손실감은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린오크스를 대리하는 법무법인의 대변인은 "정부 대응의 규모와 속도가 가장 우려스럽다"며 "이로 인해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고 투자 가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대응 절차: 앞으로 몇 달이 중요하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을 이해하려면 미국의 절차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하는 중재 신청은 90일간의 냉각 기간을 거칩니다. 이 기간에 양국이 협상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죠. 동시에 USTR은 별도로 공식 조사 착수 여부를 최대 45일 내에 결정합니다.
조사가 시작되면 공청회와 공공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진행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한국산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의 보복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게 현실화되면 한미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 벤처캐피털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통상 협정 위반을 이유로 중재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극히 이례적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쿠팡 사태: 정부는 왜 강하게 나갔을까
개인정보 유출의 규모: 계속 커지는 피해
먼저 사건의 규모부터 살펴보면 쿠팡에서 확인된 개인정보 유출 규모는 약 3,370만 건입니다.
처음에는 4,500개 계정의 피해로 발표했던 것을 생각하면, 조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출된 정보에는 고객 이름, 이메일, 배송지 주소, 일부 주문 정보, 그리고 공동현관 비밀번호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송경희 위원장은 2026년 1월 2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명확한 입장을 전했습니다.
"확실한 것은 3천만 명 이상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점"
이라며 쿠팡이 자체 조사로 주장한 "3천개 계정 유출"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비회원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송 위원장은 실제 유출 규모는 더 클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송지를 지정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아닌 제3자에게 물품을 보내는 경우 등의 정보가 포함된다"
며 현재 개인정보위는 조사관 14명을 투입해 정밀 검증을 진행 중입니다.
정부가 강하게 나간 이유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부총리 겸 장관이 중심이 되어 구성한 범정부 태스크포스(TF)에는 10개 이상의 정부 기관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사고원인과 보안 문제점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유출 규모와 법 위반 여부를,
금융감독원은 부정결제 가능성과 고금리 대출 관행을,
경찰청은 압수물 분석과 국제 공조를 통한 피의자 검거를 각각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한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 거래행위 조사와 탈퇴 절차 불편성 검토를,
고용노동부는 야간 노동 및 건강권 보호조치 실태점검을,
국토교통부는 종사자 보호 및 근로 여건 개선을 추진 중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강하게 나갔을까요? 배 부총리의 발언이 이를 설명해줍니다.
"이번 쿠팡 사태를 단순한 기업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디지털플랫폼 시대의 개인정보 보호, 플랫폼의 책임성, 노동자 안전,
공정한 시장질서, 물류·유통 전반의 법 준수와 직결된 중대한 사안"
으로 봤던 것입니다.
셀프 조사 논란: 신뢰를 흔든 결정
여기서 주목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쿠팡이 '셀프 조사'를 단행했다는 것입니다.
쿠팡은 정부의 공식적인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체적으로 포렌식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3천개 계정만 유출됐다"는 주장을 내놓았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증거 연계성(Chain of Custody)을 깨뜨렸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서울경찰청 박정보 청장은 정례간담회에서
"쿠팡이 피의자의 노트북을 경찰에 임의제출 하는 과정에
미리 포렌식을 한 사실을 진술하지 않았다"
고 밝혔습니다. 이는 조사의 신뢰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결국 경영진의 '조직적 은폐 및 기만' 의혹으로까지 번지게 되어, 법무법인들이 김범석 의장과 해롤드 로저스 대표를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추가 고소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국회 청문회에서의 불성실한 대응
2025년 12월 30~31일, 국회에서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연석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현장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증인으로 채택된 김범석 CEO(이사회 의장), 강한승 전 대표, 김유석 부사장이 모두 불출석 통보를 한 것입니다.
국회의 공식적인 청문회에 최고 경영진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해롤드 로저스 임시 대표는 현장에서 거센 질타를 받아야 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쿠팡의 불성실한 대응, 정보 축소 발표, 셀프 조사의 문제점 등을 강력하게 지적했습니다.
영업정지는 검토 중, 과징금은 미정
정부의 대응 수준은 어디까지 갈까요?
배 부총리는 정보 도용 여부, 소비자의 재산상 손해 발생 우려, 쿠팡의 피해 회복 조치 등을 고려해 영업정지 여부 등을 판단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필요하다면 영업정지까지 처분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또한 국세청은 한국 쿠팡이 적자 상황에서도 미국 본사에 자문료 등을 과도하게 지급해 세금을 탈루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입니다.
과징금 규모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최근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과징금 상한액이 '전체 매출액의 3%'로 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쿠팡의 연간 매출이 약 30조원대라면, 이론적으로는 최대 9,000억원대의 과징금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사용자 반응: 1개월 만에 '탈팡' 68만명
국내에서의 반응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개인정보 유출이 공개된 지 1개월 만에 '탈팡' 소비자가 68만명에 육박했기 때문입니다.
와이즈앱·리테일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쿠팡 앱 이탈자는 67만 6,983명으로 집계됐습니다. 하루 평균 2만 3,000여명씩 탈팡 대열에 동참한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가치소비 확산으로 '탈팡'에 속도가 붙을 경우, 이달 중 쿠팡 없는 삶을 택한 소비자가 100만명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통계로 더 자세히 확인해보면, 12월 마지막 주 쿠팡의 주간 활성 이용자(WAU)는 약 5.8% 감소했습니다. 모바일인덱스 기준으로는 약 4.2% 하락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이유는 12월이 통상 크리스마스와 연말 이벤트가 몰리는 이커머스 업계의 최대 성수기이기 때문입니다.
배우 김의성, 문성근 등 유명인의 공개 탈퇴 인증이 잇따르며 브랜드 이미지 타격도 심각한 상황입니다.
보상안: 비판도 커지고 있다
쿠팡은 고객 신뢰 복원을 위해 쿠팡 와우, 일반, 탈퇴 고객 등 3,370만 명에게 1인당 5만 원 상당의 구매 이용권을 2026년 1월 15일부터 순차적으로 지급할 계획입니다. 총 규모는 약 1조 6,850억원입니다.
하지만 보상안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습니다. 구매이용권이 쿠팡 전 상품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0,000원, 알럭스 20,000원으로 나뉘어 있어, 서비스에 따라 나눠 써야 하며, 탈퇴자는 재가입해야만 보상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상을 빙자해 마케팅에 쓰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기업의 신뢰 문제로 확대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번 쿠팡 사태가 업계 전체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통신업계에서도 KT의 누적 이탈 고객이 12월 31일부터 나흘 만에 5만 2,661명을 기록했습니다. 하루 평균 1만명이 넘게 통신사를 옮긴 셈입니다.
금융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고 있습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한 소비자의 불안감이 산업 전체를 휩쓸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의 입장: "차별이 아닌 법 집행"
한국 정부는 미국 투자사들의 '차별' 주장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워싱턴 DC 방문에서 "미국의 특정 기업을 타깃하거나 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본질적으로 쿠팡에서의 대규모 정보 유출과 그 이후 대처가 미흡한 부분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그 과정에서 비차별적으로 공정하게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쿠팡에 대한 조치가 통상과 외교 이슈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도 1월 21일 명확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쿠팡의 국적은 과징금이나 처분 판단에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와 국민 피해를 중심으로 엄정하게 결론을 내리겠다"
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압박이 있다 해도 법과 원칙에 따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참고: 미국이라면 어땠을까?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이 생깁니다.
만약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이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요?
미국의 개인정보 유출 처벌은 훨씬 더 강합니다.
CCPA(캘리포니아 소비자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르면, 소비자 1인당 $100~$750 (약 13만~97만원)의 법정손해배상이 가능합니다. 3,370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최소 337억 달러(약 48조원) 이상의 배상금이 가능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실제 사례를 보면 더욱 현실적입니다.
T-모바일의 사례 (2021): 7,660만 명의 정보 유출 → 3억 5,000만 달러(약 4,590억원) 배상
고객들은 1인당 최대 $25,000(약 3,200만원) 보상 수령
추가로 1억 5,0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사이버보안 투자에 사용
페이스북의 사례 (2019): 선거 광고용 정보 유출 → 7억 2,500만 달러(약 1조원) 배상 + 3년 뒤 FTC로부터 50억 달러(약 7조3,600억원) 추가 벌금
이를 보면 미국이 한국보다 얼마나 강한 처벌을 내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정부 과징금, 소비자 배상금, 보안 투자 의무까지 합치면 100조원대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몇 개월이 중요하다
쿠팡 사태는 이제 단순한 기업 내부의 보안 문제를 넘어 국제 통상 문제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미국 투자사의 중재 신청과 USTR의 조사, 국내 정부의 전방위 조사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상황이 매우 복잡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일정을 보면:
90일간의 냉각 기간: 양국이 협상할 기회
45일 내 USTR 공식 조사 결정: 조사 착수 여부 판단
국내 조사 계속 진행: 영업정지 여부, 과징금 규모 결정
2026년 5월: 김범석 의장의 동일인 지정 재심
미국 정부의 45일 공식 조사 결정, 90일간의 냉각 기간 등을 고려하면, 향후 수개월간 이 사건이 한미 간 외교와 통상 이슈로 계속 논의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불공정 거래, 조직적 은폐 및 기만 의혹 등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송경희 위원장은 법적 근거를 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제 조사권과 자료 보존 명령을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 중"이라는 발언이 그것인데, 이는 향후 대형 정보유출 사건에서 더욱 강력한 조사가 가능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며
이번 쿠팡 사태는 단순한 개인정보 보안 사고를 넘어, 대형 플랫폼의 보안 관리와 개인정보 보호의 중요성, 그리고 국가 간 통상 분쟁의 복잡한 구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습니다.
한국 정부가 얼마나 강하게 나가야 하는지, 미국 투자사들의 주장에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지는 여러 각도에서의 해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앞으로 몇 개월이 쿠팡의 운명과 한미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소비자 권리의 측면, 기업의 책임성이라는 측면, 그리고 국제 통상 관계라는 측면까지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가 미국에서 발생했다면 훨씬 더 강한 처벌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100조원대의 배상금과 벌금이라는 상황을 고려하면, 미국 투자사들의 손실감은 실제로 매우 심각한 것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쿠팡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한미 관계는 어떻게 진행될지, 그리고 이것이 국내 개인정보 보호 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성일: 2026년 1월 23일
최신 정보 기준: 2026년 1월 21~23일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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